스튜디오에 레슨을 받으시러 오는 분들 중.
중후한 나이에 어르신이 한 분 계신다.
얼마전 그 분과 레슨 후 대화를 나누었다.
"저는 한 길을 오래 걸어오다 보니 아직까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랄까.. 신문을 구독하고 싶은데 어떤 신문사를 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조언을 구했고, 그 분은 "한 길을 걷지 않은 사람도 있나요?" 라고 하시곤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이런저런 얘기들 후에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오히려 인터넷 기사를 조금씩 읽어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어요. 알다시피 아주 많은 정보들이 있죠.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보니 어쩌면 정치 같은 것들은 모르는 채로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읽는 것을 더 권하고 싶네요. 음악도 그렇겠지만 사실 모든 것들이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하구요. 정치보다는 철학이나 역사에 관한 것들을 알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대학에 '인문학'에 대한 과들이 아주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중요한 학문인데 말이죠. 많은 책들을 읽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하셨고, 난 듣고 보니 그렇다며 예전의 어떤 기억들을 떠올렸고 왠지 모를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 중에 인상에 남는 대화가 있었는데
그 주제가 "원칙과 요령"에 관한 것이었다.
잘 기억해서 쓸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한때, 장교로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때 어떤분이 훈련중에 원칙과 요령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사람들은 보통 원칙을 지키는 것만 중요시 여기거나 혹은 요령을 피우는 일에만 특화된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원칙도 요령도 모두 중요해서 그 중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한데, 요령을 피우려면 원칙들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꼭 그 원칙들을 몸에 습관처럼 스며들게 훈련해야 한다." 라는 얘기를 들으셨다고 하시며 그건 비단 그 순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고 인생의 모든 과정들이 그러하다고 그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고 그 분을 개인적으로 여지껏 존경한다고 하셨다.
난 매우 동감 했고, 인상깊을 말이라고 말씀드리곤.
생각해 보니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라며..
"악기를 처음 배울때 기초 보다는 음악적인 것, 듣고 따라하는 것, 이런 것들에만 길들여져서 아주 오랜 기간을 요령만 피우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진 아무도 기초에 대해 엄격하게 터치하지 않았어요. 그냥 소리가 좋다. 음악성이 있구나. 이런 얘기들 뿐이었죠. 근데 처음 저희 선생님께 레슨을 받던 날 큰 충격을 받았아요. 어떤 곡을 연주 했는데.. 다 들으시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 넌 잔재주만 부리는구나- 라고 하셨죠. 아마 저는 말씀하신 요령만 피우는데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었나봐요.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고 언젠가부터 그 많은 기초책들을 외우다시피 연습했어요. 학교 후배중 한명이 누나는 왜 기초만 연습해요? 라고 해도 아랑곳 하지 않았어요. 원칙들을 세우고 싶었던거죠. 그래서 여지껏 항상 기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말씀하셨듯이 비단 한 장르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레슨을 받으면서 오랜시간 혼자 연습을 하면서 더 많이 깨달았었어요. 지금도 그 과정들이 늘 윤택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지만 노력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그 분은 "그렇네요" 라고 하셨고, 스튜디오 창문으로 해가질때 스며드는 눈부신 빛들이 넘어올때까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네요. 종종 하죠" 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저야 너무 감사하죠" 라고 대답했다.
나는 24년동안 한 길을 걸었고, 줄 곧 많은 시간들을 나름은 치열하게 경쟁하였고, 끝도 없는 절망과 간간히 보이는 희망으로 살았다. 그 삶이 나는 행복했고, 이 길을 주변의 음악가들 처럼 끝까지 걷지는 못했으나 지금, 현재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악기를 배우는 일은 정말 많은 것들과 닮아있다. 예를들면 골프쪽에 '몸에 힘을 빼는데만 적어도 3년이 걸린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 어르신께 들은 말이다- 악기를 배우는 일도 그와 같고 어쩌면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과정들에 힘을 빼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리듯. 정말 많이도 닮아있다. 내가 한 길을 오랫동안 느리게 걸어온 사람들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물론 사람 나름이긴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 과정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말을 듣고 '한 길을 오랫동안 걸었다' 라는 말이
어찌보면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고, 나는 한번 더
몸에 힘을 빼기 위해 내 자신과 주변의 많은 것들을 다시 한번 둘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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